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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진단과 클리닉 강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방문일정 현지 언론보도 사진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현지 한국인 통역의 복장상태가 프랑스측 안내자들과 프랑스 국민들에게 초래할 인상은? = 막 어글리 코리안!

 

 

박근혜 대통령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큐레이터 통역 본인 복장상태 [월간조선] 2015년 1월호.jpg

 

                                                          큐레이터 = 블라우스 류
                                                                                           통역 = 폴라 스웨터 류
                                                                             박근혜 대통령 = 정체 불명
 

 

박근혜 대통령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큐레이터 통역 본인 복장상태 wo [월간조선] 2015년 1월호.jpg

 

 

 

 

 

상기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하는 증거자료:

 

 

 


  박근혜웅산 수치
 
  2013년 11월 3일, 유럽 순방중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밀레의 〈만종(晩鍾)〉 앞에 한참이나 멈춰 서 큐레이터에게 두 농부 뒤로 펼쳐진 황혼녘의 대지와 하늘이 의미하는 게 뭔지를 묻는 등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글쎄, 대지와 하늘에 무슨 별다른 의미가 있으랴마는 그 큐레이터가 대략 난감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를 두고 한국 언론들에서는 밀레의 〈만종〉이 프랑스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보물이며, 상대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보여준 훌륭한 외교술이었다고 칭송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발소 그림’이다. 그리고 원래 감자바구니 대신 배고파 죽은 어린 아기의 주검이 그려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1857년 미국의 부호가 1000프랑을 주고 주문한 그림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서로 죽이기를 끝없이 반복한 끝에 ‘이러다간 결국 너도나도 꼼짝없이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인간 존엄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미제라블》이나 〈만종〉은 그 상징적 작품이다. 그전에 평범한 시민, 무희, 창녀, 농민, 가난한 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신(神), 성인(聖人), 왕족, 귀족, 부자들만이 그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농부를 그린 그림을 누가 사주겠는가?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물감이 귀한 재료였다. 겨우 그림 재료값에 불과하지만 1000프랑은 큰돈이다. 서민이나 농부가 그림을 살 리가 없고, 귀족이나 부자가 종교화나 가족들의 초상화도 아닌 미천한 농부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둘 리가 없다. 그랬다간 그들의 조상이 이삭이나 줍던 미천한 농부였다고 오해받는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가난할 수밖에.
 
  한데 밀레의 사후 〈만종〉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전시를 하면서 전 미국인들의 열광을 얻고, 그럴수록 프랑스 국민들은 이 그림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가슴을 쳤다.

 

 1889년 마침내 루브르 박물관이 나서서 〈만종〉을 사오기 위해 경매에 나섰지만 아깝게도 미국예술협회에 기회를 넘기고 만다. 이에 전 프랑스가 발칵 뒤집혀 시민들이 모금 운동까지 벌였지만 오히려 그림값 상승만 부추길 뿐이었다. 결국 1890년 프랑스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소사르가 당시 80만 프랑이라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주고 마침내 고국으로 가져온다. 그는 1909년 〈만종〉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고 작고하였다. 하여 〈만종〉 밑에는 언제나 ‘알프레드 소사르 기증’이란 명패가 따라붙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만종〉은 나중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진다. 왜냐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그곳의 전시품들 대부분은 프랑스의 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해서 약탈문화재들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오르세 미술관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만종〉을 찾기 전 해, 그러니까 2012년 6월, 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상을 지각 수상(지명은 1991년)하기 위해 오른 유럽 순방길에 꼭 그 자리에 섰었다. VVIP 손님이니 당연히 수석 큐레이터가 안내를 맡았다.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만종〉을 미국에서 되찾아오기 위해 범(汎)국민적 모금 운동까지 벌인 위대한 프랑스 국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며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큐레이터의 목에 걸어주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 덕에 자신이 연금(軟禁)에서 풀려나 〈만종〉 앞에 서게 된 것이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그녀를 명예 파리 시민으로 환대했다.
  
  만종〉 앞에서 눈물을 흘린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치를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이 같은 그림을 보고 대지와 하늘의 의미를 묻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르세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정도면 프랑스 예술계, 문화계, 사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그 나라 문화부장관에 결코 못지않다. 그런 그가 느낀 한국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 문화나 상품에 대한 평가는? 과연 관심이나 있을지….
  
  세계무역 10위권 대국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私的) 〈만종〉 대응과 전 세계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인 미얀마의 민간인 아웅산 수치의 공적(公的) 〈만종〉 대응이라는 교섭문화 간 역방향 괴리 모습에서 품격경영의 글로벌 현실 절벽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주인장 마인드의 매너를 지닌 리더라면 그 같은 기회를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아무튼 공부와 교양,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품격 수준을 가늠케 해준 좋은 대비였다. [월간조선 2015년 1월호]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501100068

 

 

 

 

 

[와인대사 논평]

 

이 칼럼의 핵심주제는

프랑스 국민들이 생각에 비쳐지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미얀마의 민간인 아웅산 수치 여사... 이미지 대비표 및 결과적 국가 이미지 대비표입니다.

 

전세계 최빈국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장기간 자택연금 당한 큰 제약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선진문명권 공(公)직자들의 코드를 공유, 세계최고 문명국 프랑스 국민들에게 유감없이 과시해내는 한편

 

전세계 10위 무역대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한참 후진국 아줌마로서 사적(私的) 세계관 수준에 허덕일 뿐임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한국의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한편, 여기에 인용된 아웅산 수치 여사의 스토리는 국내 어느 언론사에 의해서도 보도된 적 없는 것으로서
 

이러한 현실 팩트는 글로벌 선진문명권 언론들이 감지, 포착해내는 정론 뉴스 소재들에 완전 눈뜬 심봉사, 청맹과니 수준으로 헤매는 국내 언론의 '제 눈에 고도근시, 난시 안경' 처절한 한계를 웅변해줍니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방문일정 현지 언론보도 사진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현지 한국인 통역의 복장상태가 프랑스측 안내자들과 프랑스 국민들에게 초래할 인상은? = 막 어글리 코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