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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진단과 클리닉 강의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님의 칼럼 '빌 게이츠 악수 인사의 에티켓과 열린 양 겨드랑이 테이블매너'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4

 

빌 게이츠 악수 인사의 에티켓과 열린 양 겨드랑이 테이블매너  2013 05 16 () 00:09:50

근래 일간신문에서, 특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빌 게이츠가 청와대를 예방했을 때 왼쪽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한 것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무성했습니다. 아마 유럽 에티켓 시각에서도 거슬리게 보였을 것입니다. 서양 문화에도 유럽풍, 그리고 미국식이 있습니다. 그 한 예가 식탁에티켓입니다. 유럽에서는 식탁예절의 하나가 양 손이 식탁 위에 '보이는 상태'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한 쪽 팔이 식탁 밑, 무릎 위에 놓여 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빌 게이츠의 악수 인사는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 때, 유럽 대륙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캐럴처럼고요하고 거룩하기이를 데 없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쓸쓸하기 그지없는외로운 밤이지요. 썰렁하고 넓은 대학 기숙사에서 혼자 보낸 독일에서의 첫 성탄절 밤은고요한 밤, 적막한 밤으로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늘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당시 필자는 아시아권에서 온 유일한 동양계 의대생이었습니다. 그런 필자를측은하게 여긴 누군가가 연락을 했는지 한 교수님 댁에서 성탄절 정찬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가족들이 붐비는 가운데 모두 모여 정찬을 즐기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독일어 소통도 신통치 않은 상황이라 그만외톨이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쑥스럽고 긴장했던지 그 시간이 고역스럽기까지 했습니다
.

정찬이 끝나자 교수님이 차를 함께 마시자며 필자를 조용한 서재로 데려갔습니다. 필자의 독일 유학 동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던 중 교수님께서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의 성탄절 분위기가 매우 달라 처음엔 꽤나 어색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사람이 승마(乘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느냐면서, 혹시 미국의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영국식 승마는 양 겨드랑이를 몸에 딱 붙인 똑바른 자세를 취하는 데 반해, 미국의 카우보이는 양쪽 팔을 새의 날개처럼 벌리고 달린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독일의 생활 에티켓을 익히는 것도 대학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지요. 교수님은 식사할 때 보니 내 양 겨드랑이가 열려 있었다고 조용히 지적하며 사회생활에서도양 팔꿈치를 휘젓는행위가 볼썽사납지 않겠느냐고 덧붙였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분의 잔잔한 지혜로움이공자님 말씀처럼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작은 에티켓을 통해 사회성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이제는 이른바 다양한서양 생활양식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간혹 너무 익숙하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꽤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서양의 생활양식이 우리 삶에 그만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따금 겉보기만 그럴듯할 뿐 서양식도 동양식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서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교향악단의 단원은 물론 지휘자도 연미복으로 최상의 정장을 하고 연주에 임하지요. 이때 정장 차림의 의미는 음악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객석에 있는 청중에게 전하는무언의 예절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은 무대에 설 때 일반 구두(street shoes) 대신 무대 전용 구두(stage shoes)를 신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예를 갖추려는 것입니다
.

따라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청중도 그 답례(
答禮)의 뜻으로 깨끗한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연주회에서는 가끔 잠바 같은 의상, 심한 경우 러닝셔츠 차림을 한 젊은 청중을 볼 수 있습니다. 사소한에티켓의 합()’이 결국 시민 문화의 눈높이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하면 절로 얼굴이 붉어집니다.

예로부터 우리는화려하되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말아야 한다(
華而不恥 儉而不陋)’는 정신을 면면히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 편안함과 누추함이 혼재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봅니다. 혹시카우보이식편안함이 갖는 저급 생활습관이 우리의 양질 에티켓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현대미술관회 회장

 

 

 

 

 

열린 양 겨드랑이.docx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님의 칼럼 '빌 게이츠 악수 인사의 에티켓과 열린 양 겨드랑이 테이블매너'